내일모레면 오십이 다 돼 가는 나이에 뜬금없이 주식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직장인의 절반 이상이 하는 주식투자를 저는 이제까지 한 번도 기웃대지 않았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타의에 의해 시작을 한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이 사람 바보 아냐? 아직까지 주식을 해본 적이 없다니!" 하며 놀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의레 직장인들의 단골 수다거리는 뭐니 뭐니 해도 주식 시장 얘기만 한 것도 없고, 그런 틈바구니에서 딱히 할 얘기가 없었던 저는 그저 멀뚱멀뚱 자칭 고수(?)들이 하는 얘기를 들어주는 역할만 했으니까요.
그렇게 시시한 인생을 살던 제가 왜? 어떤 계기로? 주식을 시작하게 된 걸까요?

아빠 주식 사줘!
제목1 폰트크기로 크게 썼는데 어울리나요? ㅎㅎ
어느 날 엄마와 외출을 하고 돌아온 초등학생 아들 녀석이 저에게 뜬금없이 저 제목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아빠 나 주식 사줘!"
갑자기 훅 들어온 아들의 외침에 저는 잠깐, 아니 상당히 긴 당혹스러움에 머릿속이 복잡해졌습니다.
'갑자기 웬 주식?'
주식에 대해 잘 모르는 저보다도 10배는 더 모를 것 같은 아들이 주식을 사달라니, 이것 참 웃기는 것도 아니고 기가 막혔습니다. 사실 그보다는 어쩌면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갑자기 이런 어처구니없는 의뢰가 들어온 것에 당황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렸을 때부터 주식 같은 것도 사 봐야 돈에 대해서 잘 알게 되고 투자 공부도 할 수 있다고 하네."
와이프의 추가 설명이 있고 나서,
"그래서 은행에 있는 내 돈 전부를 아빠 통장으로 이체해 놨어.^_^"
아들의 친절한 부가 설명이 이어집니다.
'아~ 이 시추에이션은 거의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인 거 같은데...'
머릿속에서 갑자기 쥐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아들의 똑 부러진 추가 설명이 이어집니다.
"내 휴대폰 삼성 갤럭시 맞지? 삼성에도 투자해 줘."
이런 얘기까지 듣고 있자니 저보다 아들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만히 앉아서 계속 얘기만 듣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제 가족인 이 두 사람은 필시 주식투자를 시작하는 것이 휴대폰으로 계좌이체를 하는 것처럼 쉬운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게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죠.
"O.K!! 아빠가 네 이름으로 투자해 줄게."
주식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일단 이렇게 질러놓긴 했습니다. 내일이 되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삼성전자 주식은 샀어?
다음 날 아들과 와이프가 동시에 저에게 물어본 말을 정확하게 옮겨 놓은 것입니다. 갈수록 진퇴양난입니다. 아직 본격적으로 액션(?)을 하지 않았다고 고백을 하는 저에게 갖은 구박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사야 되는 것인가?'
이렇게 되면 결국 주식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몸으로 깨우쳐 봅니다. 이래 봬도 가족 서열순위 넘버쓰리(꼴등)인 제가 그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나는 왜 평생 주식투자를 하지 않았을까?
이제야 하는 고백이지만, 20대에 아주 아주 잠깐 주식투자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IMF로 떠들썩했던 한국 사회가 조금씩 안정을 되찾고 있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투자 금액이 50만 원 정도 했던 거 같아요. 지금도 상황에 따라서는 큰돈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50만 원이 지금과 같은 느낌은 아니었어요. 아주 꽤 큰돈이라고 볼 수 있었죠.
마침 함께 일을 하던 동료 선배도 열성적인 주식론자(?)였기 때문에 꿍짝이 맞아서 매일 주식 수다로 꽃을 피웠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뭐,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는 것도 기억이 납니다.

투자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의 30만 원을 잃었던 아픈 기억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주식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냥 어리숙했던 거 같아요. 젊은 나이에 돈 생기면 회사 동료나 친구들과 술이나 먹을 줄 알았지, 주식공부.. 자본.. 투자.. 뭐 이런 건 아예 생각하지도 못했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계속 스스로 멍청했다는 자아비판만 하는 꼴이니..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사실 그때 30만 원 가까이 돈을 잃고 생각했던 게 있어요. 머릿속에 부정적으로 강하게 입력이 됐죠.
"주식을 하는 건 놀음이나 도박이 아닐까?"
맞아요. 이 나이가 되도록 주식투자를 쳐다보지도 않은 건 바로 머릿속에 각인된 부정적인 생각들이 계속 행동을 못하게 한 것 같아요. 제 어머니는 도박이나 놀음 같은 것을 정말 싫어하셨는데, 아버지가 지금 제 나이 정도였을 때 동네 화투놀이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날려 버린 아픔이 있거든요. 무슨 삼류 영화나 드라마 레퍼토리 같지만, 얘기를 안 해서 그렇지 주위에 저 같은 분들이 꽤나 있을 거예요. 어머니가 이를 꽉 물고 전해주신 말에 의하면 80년대에 3천만 원이 넘는 돈을 갚아 주셨다고 하니... (어렸을 적에 짜장면을 자주 못 먹었던 건 이 때문인 건가? ㅠㅠ) 그때 동네에 살지 않던 전문 도박꾼(타짜)에게 당한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어머니께서 늘상 말씀하셨던 "놀음에 빠지면 패가망신하는 거니, 너는 정신 똑바로 차려라."라던 말들이 주식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저에게는 자연스럽게 '놀음 = 도박 = 주식' 공식으로 머릿속에 깊숙이 박혀 있던 것 같아요.
토스로 삼성 주식을 사다
암튼 모자(母子)의 갈굼에 더 이상은 못 버틸 거 같아서 결국 주식을 쉽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봤습니다. 직장인이라 평일에 증권회사에 가서 계좌를 만들 수도 없고, 왠지 요즘 세상엔 '어플'로 안 되는 게 없을 것 같아서 찾아봤더니, 다행히도(?) 토스에서 계좌를 만들고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더군요. 그것도 비대면으로, 그것도 아들명의로. ㅎㅎ
좀 웃긴 게 토스에서 비대면 계좌를 하나 만들어서 용돈을 이체해 놓고 사용하고 있었음에도 토스 어플로 주식 계좌를 만들 수 있는 걸 몰랐다니... '너 좀 바보 아니니?'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네요.
며칠 만에 증권 계좌 개설하고 삼성 주식을 좀 사고 나서 봤더니... 아들이 사달라고 한 날보다 조금 올라있더라고요. 이걸 또 우리 집 서열 1순위와 2순위에게 이실직고하니까.. "그날 샀으면 좀 더 저렴할 때 살 수 있었잖아." 괜히 욕만 더 먹었네요..

불쌍한 내 인생. 뭐 지금이라도 샀으니 된 거죠.
여기까지가 과거 시점이고요. 지금부터가 현재인데요. ㅎㅎ
약 두 달이 지난 시점인데, 정확히 삼성전자 수익률이 -20.8%라고 찍혀 있네요. ㅎㅎ ㅠㅠ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아니 와이프에게만 사알짝 말했더니, 웬일로 저를 위로해 주더라구요.
"괜찮아. 지금 팔 것도 아니고. 장기투자하기로 했잖아."
오오~ 장기투자. 수익률이 -20%가 나와도 장기투자면 괜찮은 거군. 와이프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찰나.
"아들에겐 얘기하지 말구. 뭐 잘못되면 오빠가 채워 놓으면 되지.ㅋ"
그럼 그렇지.

아이구 내 팔자야~
- 2편에 계속 -